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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격은 다시 균형이다
김동완교수의 좋은이름
2018-06-11 09:14:58

김구 선생의 자서전 '백범일지'에는 선생이 과거시험을 보러 갔다가, 중인의 신분으로 장원급제를 해도 양반 대신 글 써주는 사서 노릇밖에 더하겠는가 하여 과거시험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모습을 본 선생의 부친은 선생에게 풍수, 역학, 관상에 관한 책들을 구해 주고 그 책들을 공부하게 하지요.

그렇게 관상학을 공부하던 김구 선생이 자신의 얼굴을 거울에 비추어보니 영락없는 거지의 상(相)이었습니다. 이에 실망한 선생은 자살을 결심하기에 이르렀죠. 그러다 책을 덮으려는 순간, 눈이 번쩍 뜨이는 구절이 들어오는 겁니다.

 

'관상불여심상(觀相不如心相)'

즉, 관상이 아무리 뛰어나도 심상을 따라갈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자신의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관상을 극복할 수 있음을 깨닫고 선생은 세상을 보는 눈을 더 키우는 계기를 마련했죠.

김구 선생의 사주를 살펴보면 평생 바깥으로 떠도는 역마살이 보입니다. 또한 자신을 위해서는 돈을 벌지 못하고 남에게 구걸하는 사주를 갖고 태어났던 거죠. 거기에 관상마저도 거지의 상(相)이었던 겁니다. 하지만 김구 선생은 구걸을 하되, 독립자금을 위한 구걸이었죠. 자신을 위해 돈을 벌지 못하니 평생 청빈하게 대한독립을 위해 살았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역학의 묘미입니다. 사람마다 장점과 단점을 정확하게 합치면 무(無)가 됩니다. 태초의 상태인 무(無)로 돌아가는 거죠. 어떤 사람이든 좋은 운과 나쁜 운의 분량을 수치로 합산한다면 분명 제로가 될 것입니다. 그만큼 운명은 절묘한 균형을 이루며 흘러가는 것이죠. 지금 상황이 절망스럽다면, 반대로 반드시 희망이 존재한다는 말입니다.

서예를 익히려면 먼저 서법(書法)을 익혀야 합니다. 그런 연후에 서작(書作)의 원리를 익혀서 창작의 바탕을 이루게 되는 과정이 필요하죠. 이후 형림(形臨), 의림(意臨), 배림(背臨)의 과정을 거치면 격(格)이 생깁니다. 격이 생기면 비로소 글씨의 형태가 갖추어졌다고 볼 수 있는 거죠.

"서법은 필요하지만, 어느 경지에 다다르면 서법은 결국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파격의 경지에 이르면 비로소 자신의 서체를 찾을 수 있는 거죠. 글씨의 형태는 서로 깨지고 부딪히면서 새로운 형태의 서체가 탄생합니다. 거기에는 자연의 이치가 깃든 균형이 자리를 잡는 것입니다."

충북에서 명필로 이름을 높이고 있는 서예가 K씨의 말입니다. 파격(破格)이라는 깨침의 과정을 겪지 않고는 자신만의 세계를 여는 예술가로 나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결국 파격해야 이치가 들어오고 근본이 보이니까요.

중국의 유명한 임제 선사는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버리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라고 일갈했죠. 바둑에서도 프로가 되려면 정석을 익히되, 정석을 버리라고 가르칩니다. 결국 파격, 깨트림을 통해 다시 균형의 꽃이 피는 원리인 거죠. 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이겨내야 봄을 맞이해 싹을 틔울 수 있는 자연의 이치가 그대로 담겨 있는 것입니다. 격(格)이란 결국 어떤 길로 나아가기 위한 하나의 울타리이며 표식일 뿐인 거죠.

사주의 요체는 균형에 있습니다. 부족한 것을 채워주고, 넘치는 것을 덜어내는 것이죠. 그리고 다시 균형이 잡히면, 양쪽의 시선을 보게 되는 겁니다. 2016년 한 영화잡지에서 주관한 '열등감과 절박함이 만든 작가와의 대화'란 주제로 토론에 나선 김기덕 영화감독의 인터뷰가 무척 인상적입니다.

"편견을 버리는 것이 인생입니다. 선과 악이라는 것도 결국 시소처럼 양쪽의 균형이 아닐까요. 우리가 살아오는 모든 현상은 균형이 아닐까 생각하죠. 제가 좋아하는 말은 흑백동색(黑白同色)이란 말이죠. 그것은 서로를 바라보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균형은 제 삶 또는 시나리오의 모든 작업의 기준을 정하고 있지요."

무술년 새해도 한 달이 다되어 갑니다. 일희일비로 점철되어지는 일상에서도 담대하게 나아가는 마음으로 화평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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